- 마추픽추(페루) - 거대 예수상(브라질)
- 치첸이트사(멕시코) - 만리장성(중국)
- 타지마할(인도) - 페트라(요르단)
- 콜로세움(이탈리아)



   세계 새 7대 불가사의는 2007년 7월 7일 스위스의 영화 제작자이자 탐험가인 베르나르드 베버의 '뉴 세븐 원더스’ 재단이 포르투갈 리스본 경기장에서 ‘신세계 7대 기적’을 발표했다. 1999년부터 200여 개의 유적지를 접수받아 21개의 후보지를 선정한 뒤 인터넷과 휴대전화메시지 등을 이용해 여론조사 등으로 최종 7곳이 선정되었다.


   페루 남부고원, 쿠스코 서북방의 우르밤바 계곡을 내려다보는 산상에 있는 잉카유적으로 명칭은 케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의 뜻으로, 배후의 암산은 젊은 봉우리라 불린다.
   쿠스코 양식의 석조 건축군이 산릉에 밀집하고 이것들은 도시생활, 거주, 제사, 요새 등의 제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묘지도 있었다.
   스페인 정복 당시부터 그 이후까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1911년 미국의 빙엄(H. Bingham)에 의해서 발견되어 세계적으로 유명해 졌다. 또한 우르밤바 계곡 상류에는 잉카시대의 유적이 많고 피사크, 올란타이탐보, 위냐이와이나 외에 마추픽추보다 하류의 비르카밤바 유역에도 비트코스, 로사파타, 에스피리투판파가 있다.



[마추픽추(잉카유적지)]

   브라질 히우지자네이루 코르코바도산(704m) 정상에 있는 그리스도 상이다.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지 100주년 되는 해를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규모는 높이 38m, 양팔의 길이 28m, 무게 1,145톤이다.
   설계는 브라질인 에이토르 다 실바 코스타와 폴란드계 프랑스 조각가 폴 란도프스키가 담당했고 자금은 기부금으로 충당되었다. 프랑스에서 만들어 브라질로 옮겨져 조립했다.
   1926년부터 5년간에 걸쳐 1931년 10월 12일 세웠다. 그리스도가 두 팔로 넓게 벌리고 서 있는 모습으로 신체부분을 각각 따로 조각하여 결합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외관은 하얀 빛깔의 납석을 발라 마감하였으며, 기단 내부에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이 있다. 주변에서는 코파카바나 해안, 이파네마 해변, 슈가로프산 등의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



[거대 예수상(지상의 천사)]

   멕시코 유카탄반도 북서부의 도시 메리다의 동쪽 약 110km 지점에 있는 마야문명의 대유적지로 건조한 석회암지대에 있다. 유적은 석회암, 회반죽한 흙·목재 등으로 되어 있다.
   이트사족에 의한 최초의 취락 건설은 530년 이전의 일이라 하며, 7세기에 일단 포기되었다가 10세기에 재건되었고, 11세기 이후는 마야 신제국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13세기 초에 이트사족은 아스텍-톨테카족의 연합군에 패하였으나, 이후 가장 번영시대를 맞아 많은 건물이 만들어졌다. 그러다가 15세기 무렵에 갑자기 폐허가 되었다. 유적은 8㎢의 넓은 지대에 걸쳐 있고, 카스티요(높이 25m의 피라미드)와 그 동쪽의 ‘전사의 신전’, 도로 건너편의 ‘천문대’ 등이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다.



[치첸이트사(마야유적지)]

   ‘인류 최대의 토목공사’라고 불리는 이 거대한 유적은 중국 역대 왕조들이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운 방어용 성벽이다.
   지도상 연장 길이 2,700㎞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들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약 5,000~6,000㎞에 이른다. 동쪽 산하 이관에서 서쪽 자위관까지 동서로 길게 뻗어 있다.
   만리장성의 기원을 진나라 시황제 때로 보지만 그보다 훨씬 전인 춘추시대(BC 770~ BC 443)부터 북쪽 변방에 부분적으로 성벽이 건축되었다. 통일 왕국인 진나라가 들어서면서 북쪽의 흉노를 견제하기 위해 이들 성벽을 연결하고 증축한 것이다. 만리장성은 동쪽 랴오양에서 서쪽 간쑤성 민현까지로 지금보다 북쪽에 있었다.



[만리장성(방어용 성벽)]

   인도의 대표적인 무굴제국의 이슬람 건축으로 아그라에 위치한다. 자무나강 옆에 있는 궁전형식의 묘묘로 ‘타지마할’이란 말뜻은 ‘마할의 왕관’이란 의미이다.
   무굴황제인 샤자한 (재위 1628~58)이 애비 뭄타즈 마할을 위해 세운 것으로 1630년부터 22년간 2만 명이 넘는 노동자를 동원해 완공하였다.
   남쪽에 거대한 누문이 있고, 묘당은 북쪽에 위치하는데 중앙에는 대 돔이 58m의 높이로 솟아 있으며 묘당의 주위에는 네 개의 미나레트가 서있다. 이 건물은 모두 백색 대리석으로 묘 내부의 홀에는 정교한 투조 대리석의 장병을 두르고 안에는 묘석을 안치하였다. 설계자에 대하여는 여러 설이 있으나 우스타드 이사인 것 같고 그밖에 수많은 기술자를 국내외에서 초빙하였다고 한다.



[타지마할(황제비 무덤)]

   타지마할은 페르시아, 터키, 인도 및 이슬람의 건축양식이 잘 조합된 무굴건축의 가장 훌륭한 예이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인도에 위치한 무슬림 예술의 보석이며 인류가 보편적으로 감탄할 수 있는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페트라는 요르단 남서부 내륙 사막지대의 해발 950m 고원 바위산에 남아 있는 도시유적이다. 향료무역으로 이 일대를 장악했던 아랍계 유목민인 나바테아인이 건설한 고대도시다.
   예로부터 이곳은 사막의 대상이 홍해와 지중해를 향해 갈 때 반드시 거치는 교역의 중간 기착지였다. 그 지리적 이점 때문에 이들은 사막의 한가운데에 붉은 사암으로 이루어진 바위산 틈새에 도시를 건설했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좁고 깊은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들어간 곳에 극장과 목욕탕, 완벽한 상수도 시설이 갖추어진 도시가 숨어 있다. 한동안 번성하던 나바테안 문명은 2세기께 이곳을 점령한 로마가 교역로를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급속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6세기경 발생한 지진에 의해 도시 전체가 흙으로 묻혀 있다가 19세기 초반에야 재발견되었다.



[페트라(고대도시)]

   로마의 포로로마노의 동쪽에 있는 세계 최대의 원형투기장으로 장경 188m, 단경 150m, 주위 527m의 장대한 타원형 플랜으로, 높이 48m의 외벽은 4단으로 나뉘어 1단부터 도리스식, 이오니아식, 코린트식의 순으로 원주가 아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다.
   4단은 아치가 없고 코린트 식의 편개주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내부는 약 5만인을 수용하는 카베아(계단식 관람석)가 방사상으로 배치된 벽체와 그 위에 건넨 궁륭으로 지탱되어 있다.
   벽 사이는 모두 통로로 사용되고, 바깥쪽은 아케이드로서 개방되어 있다. 투기장은 장경 86m, 단경 54m의 판자로 막아져 있고 그 아래에는 기구보관실이나 맹수를 넣어두는 칸이 늘어서 있다. 투기장은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맹수 사이에 격투가 벌어지고, 때로는 물을 채워 모의해전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



[콜로세움(경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