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서울 정상회의가 12일 세계 경제가 '강하고 지속 가능하며 균형 잡힌 성장'의 길로 나가기 위한 새로운 지침을 담은 '서울선언문'을 채택하고 일정을 마쳤다. 여러 가지 세세한 현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으나, 가장 중요한 환율 갈등 문제는 다음 프랑스 칸 회의로 그 해답을 미뤘다.
환율 분쟁과 관련해 선언문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반영될 수 있도록 시장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옮겨가고, 환율 유연성을 높이며, 경쟁적인 평가절하를 자제한다'고 했다. 지난달 말 경주 재무장관 회의 합의를 다시 확인하면서 '환율의 유연성을 높이도록 한다'는 원칙을 새로 추가했다. 환율 갈등의 해법 중 하나인 경상수지 흑자·적자 규모를 관리하는 방안에 대해 내년 상반기까지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경주합의에서 한 걸음 더 내딛기는 했으나 실질 합의는 내년으로 넘긴 것이다. 의장국인 한국으로선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러나 환율 분쟁과 경상수지 가이드라인 설정이 서울회의 목표의 전부는 아니다. 금융위기 재발을 막기 위한 규제 강화와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 각국의 거시경제 정책 공조,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 지원 같은 분야에서 여러 성과를 냈다. 작년 피츠버그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지속 가능한 균형성장을 위한 협력체계'와 관련해 G20 정상들은 서울선언문 부속서인 '서울 액션플랜'에 환율·무역·재정·금융규제개혁·구조개혁에 대한 국가별 정책 공약을 담았다. 세계 경제의 불균형을 바로잡으려는 공동 노력에 들어간 것이다.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 일반 은행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정책 권고안도 내놨다.
한국이 제안해 '코리아 이니셔티브'로 불리는 글로벌 금융안전망과 개발도상국 지원에서도 주목할 만한 진전이 있었다. 정상들은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에 IMF가 미리 구제금융을 공급할 수 있도록 대출제도를 개선한 데 이어, 2단계로 지역 금융안전망과 IMF의 협력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개발도상국의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100대 행동계획을 담은 '서울 컨센서스'도 내놓았다.
처음 열린 비즈니스서밋도 빼놓을 수 없다. 120개 세계 주요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참여한 비즈니스서밋은 G20 주요 정상들과 기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 경제가 나갈 길을 논의하는 새로운 채널을 열었다. 지난달 경주 재무장관 회의에서 합의한 IMF 지분개혁도 세계 경제의 권력구조를 다시 짜는 첫 걸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선언문'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 워싱턴에서 열린 첫 회의 이후 네 차례 정상회의에서 합의한 사항을 실현하기 위한 방안을 담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변화를 반영하면서 G20에 속하지 않는 대다수 신흥·개도국들을 끌어안으려는 노력도 보였다. 그러나 G20이 경제위기에 대처하는 비상기구에서 세계 경제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G20 국가들 사이에 경제위기에 대한 공감대와 절박성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정상회의는 G7(미국·일본·독일·프랑스·영국·이탈리아·캐나다) 밖에서 열린 첫 G20 정상회의이다. 세계 언론들은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성인식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식민지 지배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하루하루 먹고살기도 힘겨웠던 나라가 세계 경제의 현안을 논의하는 중심 무대를 제공했다는 것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의장국으로서 세계 주요국들의 이해관계와 갈등을 조정·중재하는 '코리아 리더십'도 선보였다.
대한민국이 세계 외교 무대의 한복판에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고, 우리 내부적으로 그런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 이번 G20 서울 정상회의의 가장 큰 소득일 것이다. (조선일보 사설 2010.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