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상징물 어떻게 하나”

국가 상징은 상징‘물’, 상징 ‘빛깔’, 상징 ‘구호’로 나누어볼 수 있다. 여기서는 상징물에 대해 주로 말하고 나머지는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1. 상징물

우선, 국가 ‘상징’과 국가 ‘이미지’를 구별해야 한다. 더 나아가 상징이든 이미지든 이를 상징 ‘로고’로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다.

한국인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역동성, 친절함(불친절?) 같은 것들은 국가(국민) 이미지에 해당한다. 발제문에서 제시했듯이, 한국(인)의 대외 이미지는 이밖에도 다양할 수 있다. 국가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이런 것들 가운데 좋은 이미지는 확산시키고 나쁜 이미지는 불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국민적 성격들은 국가 이미지는 될 수 있어도 국가 상징은 될 수 없다. 국가 상징은 국가 이미지 중에서도 특히 다른 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고유하고 특수한 것’ 그러면서 ‘긍정적인 것’이어야 한다.

그러면 한국의 국가 상징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무형의 것과 유형의 것 이 있을 수 있다. 우선 무형의 것으로는 옛날이라면 유교 전통, 은근과 끈기, 조용한 아침의 나라 등을 들 수 있겠고, 요즘이라면 역동적 발전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역시 이들은 ‘상징’으로서는 약하고, 여러 ‘이미지’들일 뿐이다. 다시 말해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무형의 상징을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그런데 국가 상징‘물’은 국가 이미지나 국가 상징 가운데서 무늬로 표현할 수 있는 ‘유형의 실체’여야 한다. 무형의 것이라도 형태를 만들어 상징 도안을 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 한국의 상황에서 그것이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정’을 상징 도안할 수 있을까? 또 그것이 내세울 만한 한국 고유의 특성일까?

유형의 국가 상징물, 다시 말해 한국에 고유한 실체 중에는 흔히 떠오르는 1) 김치 같은 전통 음식, 2) 석굴암, 불국사 같은 전통 문화 유산, 3) 설악산, 동해 일출 같은 자연물, 4) 한류 상품, 정보 산업 기술 같은 최근의 현대적 문화-산업물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 외국인의 눈을 끌 수 있고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물은 무엇일까? 김치는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고 외국인에게도 많이 알려져 있어서 한국의 상징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한국의 대표 상징으로 삼기에는 너무 ‘문화적’이지 못하다. 미적인 면에서도 상징 디자인으로 개발하기 곤란하다.

불국사, 석굴암 같은 것들은 훌륭한 문화 유산이지만 중국-일본 것들과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설악산, 제주도는 아름답지만 후지산 같은 뚜렷하고 강한 이미지가 없다. 그렇다고 깨진 기왓장을 백제의 얼굴이라고 상징으로 삼는 것은 우리 내부에서는 좋을지 모르나 외국에 내세우기에는 너무 빈약하다.

태극기는 국기이니 그 자체로 상징물이지만, 국기를 국가 홍보 상징으로 삼는 것은 어색하다. 더구나 태극 무늬는 중국 주역에서 온 것이라 우리 고유의 것도 아니다. 이를 ‘우리화’ 되었다고 본다면 여러 분야에서 디자인으로 이용할 수 있겠으나, 이를 한국을 대표하는 상징 무늬로 개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2. 한글을 국가 상징물로

그래서 토론자는 한글을 국가 상징물로 개발, 디자인할 것은 강력히 추천하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글은 우리의 가장 고유한 문화 유산이다. 그보다 더 독창적인 우리의 창조물은 없다.

둘째, 한글은 우리의 가장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이다.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우리의 창조물은 없다.

셋째,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글자다. 그보다 더 우수한 글자는 없다--고 외국 학자들이 입을 모아 말한다.

넷째, 한글은 정보 통신 산업과 가장 잘 어울리는 글자다. 그보다 더 어울리는 글자는 없다--고 모든 관련 학자들이 말한다.

이런 까닭들 때문에, 한글을 한국의 상징물로 삼으면, 첫째 한국의 고유성이 두드러질 것이고, 둘째 한국의 자랑스러운 문화 유산을 세상에 널리 알릴 수 있고, 셋째 한국의 정보 산업 발달 또한 세계 만방에 널리 알릴 수 있다.

우리가 세계를 향해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주로 불교나 민속, 또는 얼마 남지 않은 옛 건물 같은 전통 문화 유산이라기보다는 최근 이루어낸 눈부신 발전상이다. 그 중에서도 정보통신 산업과 민주화가 두드러진다. 이런 이미지를 외국에 심어야 하는데, 한글은 이와 훌륭한 짝을 이루는 또 다른,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국가 상징이자 이미지가 될 수 있다.

더 중요한 점은 이 두 가지가 밀접히 관련된다는 사실이다. 한글이 정보통신 산업에 매우 적합한 글자임은 다 아는 사실이고, 한글 창제는 글 못 읽는 백성을 위한 것이어서 민주 정신이 처음부터 거기에 짙게 배어 있다. 이렇게 보면 한글에는 우리의 ‘무형’ 유산과 ‘유형’ 유산이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한글의 우수성과 그 정신을 외국에 적극 홍보하여 국가 이미지를 높일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에 비해 ‘한류’는 국가 이미지 제고와 문화 상품 수출에 이바지하지만, 정부 차원에서 나설 일도 아니고 대중문화의 유행이 언제 바뀔지 모르는 터라 한국 상징 운운하기에 부적합하다.

한글 상징물은 한글 자모를 형상화할 수도 있고, 아니면 예를 들어, ‘한’과 같은 음절 또는 낱말이나 구절의 형태로 만들 수도 있다. 또 한글로만 디자인하기가 조금 어색하다면 이를 나라꽃인 ‘무궁화’와 같이 조합하여 무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무궁화는 한국의 나라꽃인데도 이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한국 상징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정부 문양이나 화폐 같은 데 이용하고 있지만, 이는 전부 국내용일 뿐이다. 이를 한국의 상징 또는 이미지로 외국에도 적극 알릴 필요가 있다. 일본의 벚꽃과 비교하면 참담할 지경이다.

아니면 한글과 같이 할 다른 전통 또는 고유 상징물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통 창틀 문양이나 청사초롱 같은 것도 한글과 같이 디자인할 수 있다. 또 상징 디자인을 하나만 할 것이 아니라 두세 개 로 다양하게 만드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3. 상징 빛깔

국가 상징물을 디자인할 때 색채 디자인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을 연상시키는, 다시 말해 ‘한국적인’ 빛깔 또는 빛깔들의 조합을 창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진한 검정과 빨강을 조화시킨 것은 일본적인 느낌을 준다. 한국에서 번창하는 ‘투다리’ ‘신씨 화로’ 같은 식당 상징물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전통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현대에 자연스레(?) 창조된 일본 빛깔이다.

신씨 화로는 우리 식 고기구이 집인데 실내 구조와 로고가 일본식으로 되어 있다. 이런 것이 매우 많다. 한국 민속 음식점도 일본 글자가 씌어진 일본 홍등을 단 것들이 있다. 일본 손님이 많아서라나? 그래봤자 1/20도 안 될텐데... 이 모두 일본 상징의 힘과 우리 상징의 힘 없음을 반영한다. 여기서 드는 또 다른 생각은 한국의 ‘대표’ 상징물과 다양한 또 다른 상징물들을 동시에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후자는 주로 민간의 몫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런 한국적 빛깔을 개발하지 못했다. 축구대표단의 빨강-파랑은 아니라고 본다. 세련된 빛깔이 아니고 우리 전통과도 관계없다. 세련되었거나 전통과 관련 있거나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하고, 외국을 연상시키는 빛깔이 아니어야 한다. 얼핏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색동 빛깔, 황토 빛깔, 단청 빛깔 등인데, 전문가들이 고심해 주기 바란다.

4. 상징 구호

한국의 상징 구호로 정부는 ‘다이내믹 코리아’를 정했다. 반응이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힘차게 들리기는 하나, 우리는 이제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하지 않나 한다. 혼자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다이내믹’하게 건설하기도 하지만 다이내믹하게 사고 치기도 하는 게 한국이다. 이것이 20세기 후반기의 한국이었다면 21세기의 한국은 좀 더 성숙한 문화 국가, 문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고 본다.

아직은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역동’은 개발도상국을 연상시킨다. 중국, 그것도 상하이나 셔먼에 어울리는 구호다. 좀 더 깊이 있고 정신적이고 문화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발전상을 담을 수 있는 구호를 개발해야 한다. 하나가 어렵다면 ‘정신-문화-성숙’ 지향과 ‘발전-국력 신장’ 지향의 구호를 복수로 만들어도 된다.

5. 적극적인 민관 협조

국가 상징물의 개발과 보급은 민간과 관계(중앙 정부와 지자체 모두)가 적극적인 협조를 이루어야 한다. 일반 국민과 외국인들에 대한 의견 조사를 풍부하게 하고, 그 결과를 체계화시켜서 반영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 상징물 개발이 그냥 여론 조사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어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조사 결과 한국인의 이미지가 ‘역동적’이라고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반드시 한국의 상징물이나 대표 이미지로 홍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이미지와 지향해야 할 이미지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역동성의 예를 자꾸 들게 되는데, 이왕 나왔으니 계속 하자면, 여기에는 긍정적인 것과 함께 부정적인 이미지도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이것이 꼭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하기도 힘들다.

그보다는 우리가 진정으로 외국인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다가가기를 원하는지에 대한 전국민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국가 상징물 개발은 의외로 시간이 걸리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졸속보다는 심사숙고가 적어도 이 일에서만은 더 어울린다. 우리도 이제 졸속과 빨리빨리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국가 상징물 개발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 관료보다 더 창의적이기 때문이다. 이를 관계 부처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 많은 아이디어를 놓고, 또 많은 상징 개발물들을 놓고 전문가들이 숙의하고 국민들의 여론을 폭넓게 청취할 필요가 있다. 일단 국가 상징물을 결정하면, 이를 보급하는 일은 민간도 중요하지만 관계 부처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국내와 외국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와 보급을 정부 기관들이 맡아야 한다. 물론 기업이나 민간 기구들도 이 과정에 적극 참여하는 것이 좋다. 이런 식으로 민간과 관계가 협조하여 국가 상징물을 개발, 홍보, 보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영명 (한글문화연대 대표, 한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