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4 / 조선일보] 초고층 건물 건설해 국가 상징물로 조성하자

세계에서 제일 높은 건물은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어 왔다. 불과 서너달 전까지만 해도 말레이시아의 페트로나스 쌍둥이 건물(88층·452m)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다. 그러나 이제는 타이페이의 101층 금융건물(508m)이 그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울 상암동에 130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이 추진되고 있어서 우리도 조만간 세계 최고의 건물을 가지게 되는 ‘자부심’에 들떠 있었는 데, 저 멀리 아랍 에미레이트(UAE)의 수도 두바이에 160층 건물(700m)이 곧 착공된다는 소식이 보도되고 있다.

아랍 에미레이트라는 작은 나라가 왜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을 건설하려는 야심을 가졌을까? 뒤집어 생각해 보면 하나의 해답이 나온다. 이 지구에는 아직 아랍 에미레이트라는 나라의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이 나라에 세계 최고층 건물이 있다는 사실이 뉴스와 잡지, 교과서, 인터넷 등에서 다루어지면, 한 번 쯤 찾아가 보고 싶은 선진문화국의 하나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러면 ‘버즈 두바이 160층’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세지는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경제력에 비하여 국가의 자존심이 될만한 초고층 건물이 전무하다는 사실과 외국인들이 한국을 관광 대상으로 생각할 때, 보여줄 만한 건축물(초고층이 아니더라도)이 없다는 사실은 건축을 전공한 사람들에게는 늘 숙제로 남아 있다. 아파트인 경우에는 물량면에서 우리가 세계에서 제일 많이 건설하였지만, 건축작품으로서 세계인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아파트단지가 없다는 사실도 숙제다.

서울은 세계 10대 도시에 속한다. 서울만한 제반시설과 투자 요건을 갖춘 도시는 국내에 없다. 여기에 세계 최고층 건물을 세워서 우리의 자존심을 높이고, 나아가 경제활동의 중심무대와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현실은 서울에 기념비적인 초고층 건물을 건립하려 해도 적절한 부지(敷地)를 찾기가 용이하지 않다. 적절한 부지가 없는 배경에는 용적율, 고도제한, 사선제한, 항공관련 규정 등 각종 법규가 얽혀있다. 국가경영의 큰 틀에서 융통성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러한 각종 규제를 극복해도 우리에게는 풀어야 할 숙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하나는 우리의 기술과 설계능력으로 세계 최고의 건물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국내의 대다수 고층건물의 설계가 외국인의 손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을 생각하면, 이 경우에도 우리는 헛물을 켤 가능성이 높다. 우리에게 설계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국내에는 심각한 기술사대주의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기념비적인 초고층 건축물을 통하여 국가의 상징물을 조성할 시점이 되었다. 초고층 시대를 우리나라에 열기 위해서는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투자 환경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축가와 엔지니어들이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기반 중의 하나는 예술가와 이공계 전문인들에 대한 존중이 포함된다.

(김상대·고려대 교수·건축구조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