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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언대] '非노블레스'들의 오블리주 1474 HIT

입력 : 2013.08.14 03:28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이정은 대한민국역사문화원 원장
이제 다시 광복절을 맞는다. 우리 독립운동을 생각할 때 매우 두드러지나 주목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이 있다. 일제강점기에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사례가 의외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독립운동가 이회영의 6형제가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한 이야기가 대표적이지만, 망국 당시의 많은 고관대작은 일제에 협력하여 작위(爵位)와 은사금(恩賜金)을 받아 호의호식했다.

그런 특권층의 비루함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까닭인지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특권층이 사회적 의무를 솔선하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그 한 측면이 공직자의 인사청문회에서 나타난다. 인사청문회를 볼 때마다 국민은 우리 사회 노블레스들의 '깡통스러움'을 확인하며 허탈해한다.

하지만 우리 독립운동사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다. 노블레스가 아닌 '안 노블레스'들의 오블리주가 넘치도록 많다는 점이다. 이승만은 스스로 '왕족(王族)'이라고 자처했지만 집안은 몰락한 양반이었다. 김구는 양반들의 멸시와 천대를 벗어나기 위해 한때 과거시험에 목숨을 걸었고, 스스로를 '상놈 중의 상놈'이라고 했다. 안창호도 특권 계층 출신이 아니었다. 전설적 의병장인 홍범도는 고아, 머슴, 평양 감영 나팔수, 탈영병, 제지소 노동자, 사냥꾼이었다.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던 최재형의 아버지는 노비, 어머니는 관청의 기생으로 두 사람은 도망자였으며 그 자신은 가출 소년이었다. 유관순, 강우규, 윤봉길 등 대부분의 독립지사가 당시 사회에서 지도층이 아니었다. 3·1운동 때 민족 대표들은 자신들의 미미한 사회적 명망 때문에 구한말의 고관대작들을 내세우려 접촉했으나 그들이 몸을 사려서 하는 수 없이 "새 술은 새 부대에"라고 하며 스스로 민족 대표의 십자가를 걸머졌다.

대한민국은 독일 등과 달리 광복 이전에 선행 민주국가가 없었다. 왕조국가에서 일제 강점을 당한 결과로 이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새로운 국가체제를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이 '안 노블레스'들의 주인의식이 분출했다. 이 나라는 이제 임금의 나라, 양반의 나라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주인이라는 것을 행동으로, 그리고 자발적 희생으로 증명했다.

'안 노블레스'들의 희생 위에 새로 세운 나라에서 성장한 '노블레스'들은 이제 우리 나름의 오블리주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것이 노블레스들이 부(富)와 특권을 오래 지켜갈 수 있는 길이다. (조선일보 2013.8.14 A33면)
DATE : 13-08-14 05:25  |  NAME : 관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