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팍!(Herr는 독일어로 Mr.) 그걸 찾았어요!" "네? 그걸 정말 찾으셨어요?"

지난해 10월 중순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베를린을 연결한 전화기 너머 두 사람은 감격에 겨워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전화를 건 이는 악보 전문 리나우출판사의 에디트 피카르, 받은 사람은 베를린자유대의 박희석(51·사진) 박사였다.

120년 전 한류의 증거인 발레 '코레아의 신부'가 복원·무대화되는 배경에는 박 박사의 끈질긴 집념이 있었다. 원래 박 박사는 19세기 독일어권의 한국 수용사를 연구 중이었다. 자료를 찾아 작년 8월 독일 고서점의 목록을 훑어보던 중 '코레아의 신부'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1895년 발레 텍스트이지만 사라지고 없다'는 설명만 붙어 있었다. '19세기에 한국을 다룬 발레가 있었단 말인가?' 곧바로 연관 자료를 뒤지기 시작했다. 베를린 국립도서관에서 소책자를 발견한 것이 작년 9월. 13쪽 책자에는 '코레아의 신부' 줄거리가 적혀 있었다.

내용을 파악한 박사는 악보 수소문에 들어갔다. 베를린의 유서 깊은 출판사와 프랑크푸르트 전문가들은 "악보는 없다"고 단정했다. 프랑크푸르트의 리나우출판사가 마지막 기댈 곳이었다. "없는 것 같다"던 곳에서 "총보(總譜)는 없지만 개별 무곡(舞曲)이 있다는 기록이 나온다"는 답이 왔다. 채근하는 그에게 한 달여 만에 더 큰 답이 왔다. "창고에 가보니 몰랐던 박스 하나가 더 있었다"는 것이었다. 박스에는 543쪽 분량의 손 글씨 총보가 들어 있었다. 120년간 묻혀 있던 '신부'가 긴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이었다. 악보는 보존 상태가 좋아 현재 디지털화 작업 중이다. 박 박사는 2일 본지 통화에서 "'코레아의 신부'가 살아나 무대에 올려진다니 꿈만 같다"고 말했다. 관련 논문도 발견했다. "당시 빈 궁정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된 작품 중 최고라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는 내용이 기술돼 있었다.

성기숙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한국예술학)는 "서양 무용이 국내에 들어온 지 100년 만에 한국 발레단이 '코레아의 신부'를 복원해 역수출하게 된다면 국가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