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들에게 보내는 대통령의 편지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서울 서대문구청에서 35년간 일하다 정년퇴임하는 한 환경미화원 기사를 신문에서 읽고 편지를 썼다. '저도 ○○○님이 일한 세월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지만 골목시장에서 미화원을 하며…그 일자리가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오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회를 위해 주어진 책임을 다하고 은퇴하는…명예로운 퇴임을 축하드리며.'

이 대통령이 애착을 갖고 챙기는 일이 편지 쓰기다. 작년에도 신무기(新武器) 연구 중 과로로 순직한 고(故) 김동수 국방과학연구소 본부장, 폭우 속에서 고속도로 준공을 준비하다 사고를 당한 고 박용교 서울국토관리청 국장, 히말라야에 도전하다 숨진 고 고미영 산악인, 소말리아에 파견된 청해부대원 아들에게 "내 장례식에 오지 말고 나라 일에 충실하라"고 유언한 고 이성우 군무원 등의 가족에게 편지를 썼다. 대통령 편지의 대상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책임을 다했던 우리 사회의 '영웅'들이다. 편지에는 '우리 모두 영원히 기억할 것' '묵묵히 헌신한 공로를 잊지 않을 것' '조국과 온 국민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는다.

한 국가가 제대로 된 나라인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기준이 바로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는 국민이냐'인 것 같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도 그 일이라 생각한다.

이 대통령은 대선 때 '사회 공헌자 보상·예우 확대' '순직자·공상자 예우 강화'를 20대 공약으로 선관위에 등록했다. 그 무렵 재향군인회를 찾아서는 "윤영하·한상국·조천형·황도현·서후원·박동혁"이라고 제2연평해전 전사자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우리는 이 이름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당선 직후에는 헬기로 환자를 이송하다 추락 사고로 순직한 장병 7명의 영결식에 예고 없이 참석해 유족들을 위로했고, 나이트클럽 화재 진압 도중 순직한 소방관 3명의 빈소를 직접 조문하기도 했다. '연평해전 지위 격상' '소방관 3교대 확대' 등 약속을 지키려는 노력도 했다. 어제는 순직자 보상을 확대한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렇지만 아쉬움이 있다. 당선 직후 정권인수위에서는 "서해교전 추모식에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로는 그해 추모식 직전에 참석 여부를 놓고 검토를 계속하다 결국 참석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순직자들 빈소나 영결식장에서도 대통령을 좀체 보기가 힘들었다. 청와대 쪽 얘기로는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것에는 경호상의 어려움도 있고 무엇보다 유족들에게 불편함을 주는 문제 등이 있기 때문이라고는 한다.

얼마 전 대한민국의 하늘과 땅을 지키던 공군 3명과 육군 2명의 안타까운 사고가 있었다. 어린 아들 딸과 유족, 동료들의 눈물 속에 우리의 영웅들을 보내야 했다. 그 영결식장에 참석했던 정부 최고위직은 공군참모총장·육군참모차장이었다고 한다. 또 그들의 상중(喪中)에 서울에 있는 군(軍) 수뇌부들은 축구대회를 즐겼다는 말도 들린다.

이 대통령이 우리 사회의 '영웅'이나 그 유족들에게 직접 편지를 써서 챙기는 모습은 보기에 좋다. 거기에 더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우리 영웅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하며 "대한민국은 당신들을 기억할 것"이라고 약속하는 모습도 볼 수 없을까. 부하들의 관을 멀리 두고 자기들은 공이나 차는 '×'들을 매섭게 혼쭐내는 모습도, 연평 앞바다 추모식장에서 북한군들 보란 듯이 우리의 영웅들 영정 앞에 고개 숙이고 선 모습도 보고 싶다.

(조선일보 2010.3.12 권대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