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현장인 진도 팽목항 일대에 세월호 사건을 기리는 추모 도시를 만드는 방안이 제안됐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김석철(72·명지대 석좌교수·사진) 위원장은 지난 주말 서울 안국동 W스테이지에서 열린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강연에서 세월호 피해자의 넋을 기리고, 세월호로 유가족들을 치유하기 위해 가칭 '세월호 메모리얼 포트 시티(memorial port city)'를 건축위원회에서 구상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조만간 이 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대통령에게 건축 정책을 조언하기 위해 2008년 발족한 대통령 직속위원회이다. 김 위원장은 여의도, 서울대 관악캠퍼스, 경주 보문단지 마스터플랜 등에 참여한 유명 건축가다.

'세월호 메모리얼 포트 시티' 계획안에는 ▲세월호 침몰 지점과 가장 가까운 섬 관매도 서쪽에 '추모 공원' 건립 ▲팽목항에 유가족이 생활할 수 있는 주거 시설과 휴양 시설 등을 갖춘 '메모리얼포트(추모 여객 항만)' 설치 ▲팽목항~하조도~관매도를 잇는 해상 대교 건립 등이 포함했다. 세월호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이곳 해상에 '세이프티 벨트(안전지대)'를 만들어 선박 사고를 예방하는 방안도 들어 있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사건은 인간공동체의 괴멸을 보여준 참으로 부끄럽고 슬픈 일"이라며 "참극을 잊지 않도록 이 지역을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한반도 공간 구조를 볼 때 팽목항은 부산과 인천을 잇는 중간항으로 기능할 수 있고, 호남 지역 최고의 국제항이 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며 "이런 지경학적인 요건을 활용해 추모 도시를 만든다면 의미 있는 발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이 팽목항을 주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6년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연 전시 '김석철 건축 40년, 도시 40년'에서 '서남해안 어반링크(해안도시 연계)와 팽목항 계획안'을 발표했다. 당시 "서남해안을 중국과 일본까지 연결하는 주요한 링크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팽목항을 그 중심축으로 지목했다. 서울~팽목~부산, 서울~팽목~중국 장쑤성 롄윈강(連雲港)을 연결해 '서해안 어반링크'를 만들자는 구상이었다. 지난 2010년 이 안에 관심을 보인 전라남도와 계약을 맺고 프로젝트를 수행했지만, 중앙 정부 지원 부족과 김 위원장의 암 투병이 겹치면서 계획이 무산됐다.

그는 지난해 위원장이 됐을 때 다시 팽목항을 떠올렸다. 취임 당시 '해양국토 개발'을 주요 추진 과제로 삼고 팽목항 개발 계획을 추진했다. 이 와중에 지난 4월 세월호 사건이 터졌다. 김 위원장은 "모두가 넋 놓은 상황에 건축가로서 미래 지향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제2차 세계대전으로 폐허가 됐던 하와이 군항이 추모를 위한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된 것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는 오는 11월 1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팽목항 추모 도시 개발 계획을 주제로 한 전시를 열 예정이다.

(조선일보 2014.8.7. 김미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