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버지니아 주의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를 병기토록 하는 법안이 주의 상·하원을 모두 통과하고 테리 맥콜리프 주지사의 서명만 남겨 놓았다. 최근 일본이 국제무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우리를 자극해 오고 있고, 주미 일본대사관이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상당액을 지불하고 로비스트까지 고용한 가운데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의미 있는 성과다.

이런 상징성뿐 아니라 실질적인 효과도 크다. 버지니아 주는 텍사스 주 등 남부 6개주와 공립학교 교과서를 공동 채택하고 있다. 뉴욕주 및 뉴저지 의회도 동해 병기 법안을 추진하는 등 확산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수도와 이웃하고 있는 버지니아 주에는 세계 각국의 외교관과 특파원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세계 각국의 오피니언 리더로 성장하게 될 미래의 주역들이 어려서부터 동해 표기를 접하게 되는 셈이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 포스트가 이번 일을 여러 차례 보도함으로써 동해 명칭을 둘러싸고 한·일 간에 분쟁이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도 기대 이상의 소득이다. 우리로서는 일본의 '엔 파워'를 역으로 이용해 동해 표기 문제를 부각시키는 노이지 마케팅 효과를 거둔 셈이다.

이번 법률 제정은 우리가 교섭을 통해 이룬 동해 병기 실적 가운데 가장 고무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과도한 기대를 가지거나 낙관론으로 기우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버지니아 주의 입법이 당장 미 연방정부의 일본해 단독표기 입장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높지 않다. 실체를 드러낸 일본의 동해 병기 확산 저지 로비가 더욱 정교하고 강력해질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끈질긴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물론 영국·프랑스·러시아 등 주요국 정부는 일본해 단독 표기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독도 문제가 현상을 유지하면 되는 싸움이라면, 동해 병기 문제는 국제무대에서 오랜 세월 '일본해' 표기가 누려온 지위를 흔들어 현상을 타파해야 하는 싸움이다.

고지를 지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남이 차지하고 있는 고지를 빼앗는 것은 훨씬 어려운 일이다. 또 우리가 현상 타파를 위하여 공세 일변도의 교섭 전략으로 나가다가는 일본으로부터 독도 영유권에 대한 역공을 당할 소지가 있다. 우리로서는 이번 버지니아 주 입법같이 의미 있는 실적을 최대한 늘려감으로써 동해 병기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한편, 국가별 맞춤 전략에 따라 교섭을 계속해가는 것이 중요하다.(조선일보 2014.2.10 A33면 유의상 국제표기명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