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사회, 일과성이 안 되려면

무엇이 공정한 사회인지에 대해, 국민의 인식 차이가 크다.

시끄럽더라도 충분한 토론과 설득, 타협 거쳐야 사회통합에 도움

지난해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새해에는 공정한 사회의 국정 운영 기조가 정착될 수 있도록 하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지난해 8·15 경축사를 통해 이 대통령이 공정사회 추구를 제시한 이래 ‘공정사회’라는 개념은 우리 사회의 주요한 화두가 되었다. 이것이 현 정권이 추진하는 많은 일에 대해 오히려 비판의 빌미를 주어 정권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리라는 우려도 여권에서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해 그런 일이 자주 있었다. 그러나 현 정권에 대한 유불리를 떠나 공정사회의 추구라는 화두를 우리 사회에 던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우리 경제의 눈부신 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과 사회적 불만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중앙일보가 성인 남녀 101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창간 45주년 기념 설문조사에서 73%가 우리 사회가 불공정하다고 대답했다. 또한 지난해 7월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수행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지수를 조사한 결과 100점 만점에 26.5점으로 집계됐다.

　공정한 사회를 추구해 나가는 것에 대해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지, 어떠한 정책이 공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 사이에 커다란 인식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현 정부는 특히 출범 초부터 정책 추진에서 공정성 시비를 많이 받아온 정부다. 이를 만회하기 위한 공정사회 정책을 서두른다면 이는 자칫하면 포퓰리즘으로 빠져 미래세대에게 불공정한 정책이 될 수 있다.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정책이 진정 공정한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공정한 것이 무엇이냐에 대한 사회적 토론과 설득이 있고, 어느 정도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합의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 문제를 가지고 갈등과 분란을 거듭해 왔으며 국가체제와 지배구조가 바뀌어 온 것이 인류 역사다. 지금도 세계 모든 나라가 이 문제를 가지고 당이 나뉘고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 갈등을 겪고 있다.

　따라서 이 과정이 결코 순조롭거나 조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것이 우리가 선진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거쳐야 할 과정이다. 시끄럽더라도 충분한 토론과 설득, 타협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장기적으로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는 길이다. 서구에서는 산업화가 진행된 18, 19세기에 이미 자유주의·공리주의·사회주의 등의 사상이 출현하고, 인권과 자유, 정의와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진행되면서 법과 제도도 그들이 공유하는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골격을 갖추고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우리 국민은 서구의 법과 제도를 수용해 운영해오면서도 정작 그것이 바탕으로 하고 있는 가치와 원칙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묻고 성찰해보지 못했다. 한국의 경제·사회정책, 나아가서 통일 및 외교정책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그 방향이 자주 바뀌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와 철학의 뿌리가 깊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건국 이후 우리 국민은 너무 힘들게 살아왔다. 민족 간에 참혹한 전쟁을 치렀으며, 산업화에 매진하고 정치민주화를 위해 투쟁해 왔다. 편한 삶이 아니었고, 가치와 철학을 논하기에는 매일의 삶이 너무 급박했다. 동서 냉전시대의 최전선에서 늘 안보에 위협을 느끼며 살았던 탓에 사상과 가치에 대한 토론도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 국민은 이제 산업화에 성공하고 민주화에도 성공했으나 아직 선진사회를 이루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 경제력은 세계 15위, 군사력은 10위권 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적절성, 그리고 이의 운영에 있어서의 공정성은 세계 몇 위쯤 될까.

국가는 정의를 추구해야 하고 정의의 기초는 공정성에 있다. 공정사회의 추구는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국가가 항구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할 과제다. 이것이 현 정권의 일과성 캠페인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이에 대한 국민적 토론이 깊어질 필요가 있다. 토론으로 견해차가 좁혀지지는 않을지라도 토론을 통해 사회 구성원 간에 이해가 높아지고 타협과 어느 정도의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진다. 감세, 복지체계의 개편, 보건의료, 중소기업 지원, 병역의무, 수입 개방 등 거의 모든 국가정책에 공정성의 잣대는 개입되게 된다. 새해 들어 각 부처가 공정사회 정책을 쏟아내는 것보다 더 필요한 일은 이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보다 깊이 있고 열린 토론의 기회를 장려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중앙일보 2011.1.1 조윤제 서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