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엔 '門化光'보다 '광화문'이 제격

옛사람들은 정성의 '지혜'도 지극했다. 정한수(淨寒水) 떠다 놓고 가족의 안녕을 비는 '치성(致誠)'같이 정성의 극치가 치성이다. 어처구니없게 금가고 갈라진 광화문 현판은 이런 치성이라곤 없었던 '졸속'의 희생양이 됐다. '적당히, 빨리빨리' 밀어붙이는 구시대 관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처음엔 죄 없는 나무 탓·날씨 탓만 하더니 이어 대목장·각자장(刻字匠) 책임 공방으로 옮아간다. 이제는 "두고 보자", "방치하느냐" 대책 논란부터 금강송이냐 육송이냐 재료 논란까지 점입가경이다. 이제 와서 누구 탓은 부질없는 일이다.

광화문 한글 현판이 느닷없이 평지풍파를 탄 건 '박 대통령 지우기'의 작위적 인상이 짙었다. 한때 정조(正祖)의 글씨체로 하자는 주장도 공감대가 빈약했고 글자의 짜깁기도 정도(正道)를 넘은 억지 발상이었다. 문화재 복원은 토목공사가 아니다. 국민의 정성과 염원이 어우러진 '문화공사'다. 내공(內功) 깃든 현판이라면 금이 갈 수도 없다.

경복궁의 문패 격인 광화문 현판이 복원 초장부터 스타일을 구겼다. 한글 창제 위업에 빛나는 세종대왕상 뒤로 박 대통령의 한글 '광화문' 현판은 '세종로'라는 이름과 어울리는 풍경이다. 어느 어두운 창고 구석에 방치되어 있을 이 한글 현판의 먼지를 다시 털어 탈 많은 지금 현판을 대신하는 것도 대안이다.

"아교를 섞은 톱밥으로 틈새를 메워 재단청한다"는 문화재청의 발상은 즉흥적이고 이미 부러진 칼자루에 옻칠이나 하자는 얘기다. 문화재는 땜질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대상일 수 없다. 모든 결과는 '숙성의 인내'로 맺어지게 마련이다. 옛것은 옛것일 때 아름답고 값지다. 부득이 옛것이 그립다면 글씨 쓴 사람의 아우라(aura·氣)도 최대한 살아 있어야 한다.

이래저래 기 빠진 짜깁기나 분장에 재료 논쟁까지 거듭되면 이미 그건 복원이 아니라 '짝퉁'이다. 박 대통령의 한글 현판은 오리지널 원본이다. 진짜를 밝은 양지로 옮기는 일은 어찌 보면 진정한 '실용정신'이 아닐까. 게다가 오른쪽부터 읽게 된 '門化光'을 왼쪽부터 '문화광'으로 읽는 요즘 한글세대까지도 배려하고 '그 항아리에 그 뚜껑' 같은 세종로의 이름에 걸맞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조선일보 2010.11.19 유한태 태극박물관 건립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