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獨 20년, 우리는 절박하게 그날에 대비하는가

독일은 3일 브레멘시(市)에서 통일 2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동·서독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뒤 통일 협상을 시작해 이듬해인 1990년 8월 31일 45개 조항으로 이뤄진 통일조약에 서명했고 5주 뒤인 10월 3일 협정이 발효됐다. 구(舊)동독 출신인 메르켈 총리는 기념사에서 "우리가 동독을 신속히 재건해 세계에서 존경받는 독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동·서독인들의 단합된 노력 덕분"이라고 했다.

독일 공영 ZDF 방송이 통독(統獨) 2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4%가 "통일은 올바른 결정이었다"고 대답했다. "통일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사람은 14%에 불과했다. 지난 20년간 1조4000억유로(약 2200조원)를 동독 재건 비용으로 쏟아부었고, 이 돈을 조달하기 위해 독일 기업과 국민이 20년 가까이 '통일연대세'를 부담해 왔는데도 독일인 대다수가 통일의 당위성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 붕괴 직전까지 서독에서 20세기 안에 독일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본 사람은 거의 없었다. 독일 통일의 주역인 기민당 출신 헬무트 콜 전 총리조차 회고록에서 "1989년 정월에도 그해 10월에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것이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소련을 비롯한 동유럽과 정치적 화해를 시도했던 빌리 브란트, 헬무트 슈미트 등 사민당 출신 총리들은 '통일'이란 단어 자체가 무익(無益)하다고까지 했다. 좌파 지식인들은 '통일 논의'를 "현실성 없는 정치적 선전"이라고 줄기차게 비난했다. 그러나 1985년 소련에서 개혁·개방을 내건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고, 폴란드에서 시작한 민주화의 바람이 동구권 전체로 번져가 탈(脫)동독 난민 행렬이 이웃 헝가리·체코에 밀려들고 라이프치히를 비롯한 동독 대도시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중시위가 거리를 메우면서 이 상황은 단숨에 바뀌었다.

콜 총리는 이렇게 찾아든 통일의 계기를 놓치지 않았다. 경제적 붕괴에 직면한 고르바초프에겐 대규모 원조를 약속해 소련이 독일 통일을 앞장서서 반대하지 못하게 하고, 부시 미국 대통령을 적극적 후원자로 끌어들여 대처 영국 총리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반대를 잠재웠다. 동유럽 민주화의 물결이 동독의 완고한 교조주의(敎條主義) 정권의 탄압에도 동독 전역으로 확산된 데는 서독 정부가 1987년 한 해에만 동독인 500만명이 서독을 여행할 수 있게 했던 동·서독 교류 확대 정책이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정치적·정책적 노력이 있었기에 갑작스럽게 닥친 베를린 장벽 붕괴를 독일 통일로 이어갈 수 있었다.

북한이 권력 3대 세습을 서두르는 모습은 역(逆)으로 북한에 언제든지 급변(急變)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예고(豫告)라고도 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얼마나 절박하게 이런 사태에 대비하고 있는가.

동독은 냉전 시절 공산권의 경제우등생으로 공산권 각국에 중공업 설비를 수출하는 나라였다. 그러나 독일은 통일 후 동독의 사회 기반 시설 전체를 뜯어내고 다시 새로 깔아야 했다. 60년 넘게 폐쇄적 경제정책을 펴온 데다 15년 넘게 주민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북한 상황이 어떨지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1980년대 말 동독의 후견국 소련은 배급제가 마비돼 자신들의 생사(生死)를 걱정해야 할 만큼 경제적 위기에 몰린 반면, 북한의 후원자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다. 이런 중국이 북한 급변 사태가 대한민국 주도의 통일로 이어지는 사태를 용인할 것인가. 아니면 북한을 중국 세력권에 편입하는 계기로 삼으려 들 것인가.

북한 급변 상황은 우리 민족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정부와 국민이 통일은 언제든 닥칠 수 있는 현실의 문제라는 절박한 공감대 위에 서서 우리가 우리 운명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같이 찾아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20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