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 '외투 벗기기'

 세종시 문제가 큰 '갈등과 분쟁'으로 부각되면서 매서운 겨울바람과 함께 국론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느낌이다. 이를 지켜보는 충청인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다.

세종시 문제를 보면 '이솝 우화'가 생각난다. 길 가는 사람의 두꺼운 코트를 벗기기 위해 세찬 바람을 불어대니, 그 사람은 더욱 바짝 옷깃을 붙잡고 버틴다. 이번에는 따뜻한 햇볕을 쬐니 그때 비로소 무거운 코트를 벗는다는 이야기이다.

지금 세종시 문제를 놓고 한편에서는 원안수정론과 법안폐지까지 들고 나오고, 전직 총리들과 몇몇 유명인사들은 모임을 갖고 압력을 가한다. 이에 반발하며 야당은 물론 일부 여당에서도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충남에서는 삭발시위와 저항이 뜨겁다. 다른 한편, 박근혜 전 대표는 '원안+α'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정운찬 총리는 수정의견을 말하면서 충청인이 행복해하는 '자족도시'를 만들고 예산도 더 많이 투여하겠다고 말하였다.

이번에 민관합동위원회가 발족되면서 공식적인 논의의 장이 마련되고, 새로 된 정 총리가 이 문제의 정면에 서 있다. 원칙과 정도를 중시하는 학자 출신의 총리가 앞으로 크게 성공하기를 바라며, 이 문제가 슬기롭게 해결되기를 바라면서 참고로 몇 가지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첫째, 우선적으로 세종시 문제의 전체적 국면을 따뜻한 훈풍에 비중을 두고 이끌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따뜻한 햇볕을 쬐어 상대를 행복스럽게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전 대표의 '원안+α'에서 우선 +α에 역점을 두고 구체적 기획과 방안을 제시하며, 정 총리가 말한 '자족도시' 구축의 획기적 방안과 정량적 실체를 제시하는 것이다. 둘째, 행정중심복합도시를 기업중심도시로 전면 뒤집는 것이 아니라, 행정과 기업 및 다른 기능을 복합시켜 자족과 효율화를 위한 보완적 관점에서 논의하고 추진하는 것이다.

셋째, 국가와 국민 간의 신뢰구축이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중앙에서 모든 것이 짜져서 충청인의 정서와는 무관하게 정해진 수순대로 진행되는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어느 기업, 대학 등의 입주발표도 산발적이 아닌, 의견수렴과 협의가 이루어진 종합된 안이 중간 중간 모아져서 발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현지에 총리 직속 현장 상황실이나 민관합동위의 대민 협의창구를 설치하여 현지민의 의견 수렴과 협의에 깊은 정성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섯째, 충청인들의 소박한 꿈과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배신감을 느꼈다거나, 속았다거나, 무시당하고 있다 등의 아픔을 받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백년대계'니 '통일시대' 운운 등의 애매한 말은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갈등과 분쟁'은 많은 상처를 남기게 되고 결국 국력의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 지난 정부 때도 부동산 문제니 대북 대미관계, 언론 문제 등으로 적잖은 갈등을 겪었다. 본의든, 본의가 아니든, 결과적으로 상처와 앙금, 그리고 민심의 차디찬 평가를 받았다. 이 정부도 이미 촛불시위로 곤욕을 치렀고, 이제 4대강 문제와 함께 세종시 문제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

함께 풀어간다는 기본자세에서 먼저, '+α와 자족도시' 구축에 만족한 합의가 이루어지고 신뢰가 구축된다면, 원안문제의 보완적 협의에도 상당한 융통성이 생기리라 생각된다. 대국적 견지에서 지역과 국가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는데 이루지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원만한 해결방안이 나오길 기대하면서, 지난 국회 질문에서 "총리의 세종시 계획이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내 머릿속에 있다"라는 말은 앞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일수록 구체성과 진정성이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조선일보 2009.11.23 A39면 김우식 전연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