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세종시 파격적 대안 내놔야 한다.

 정운찬 총리가 3일 세종시 문제에 관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고 세종시 수정 논의를 공식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정 총리로부터 이를 보고받은 자리에서 세종시의 대안은 국가경쟁력, 통일 이후 국가미래, 해당 지역의 발전 등 세 가지 기준에 긍정적 영향을 미쳐야 한다고 지시했다. 현행법에 따른 세종시의 골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정 총리는 담화에서 (현행법에) 산업과 교육 등 복합기능을 세종시에 유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 토지 이용 계획은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를 위해 필요한 자족 기능 용지가 도시 면적의 6~7%에 불과해 수도권의 베드타운보다 못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정 총리는 "국회와 행정부, 그것도 행정부의 일부가 떨어져 있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서울로 자주 다녀야 하는 비효율도 문제이고 특히 행정 수요자인 국민의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면서 "통일이 돼 수도 이전이나 분리의 요구가 있으면 사실상 수도가 세 곳이 되거나 세종시를 다시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 불거질 것"이라고 행정 부처 세종시 이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정 총리 말대로 이 국가적 부작용은 그냥 지나치긴 어렵다. 정 총리는 "지금은 세종시에 대한 구체적이고 확정적인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며 "새로 민·관 위원회를 구성해 가급적 내년 1월까지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세종시 원안을 되돌리려면 2005년 국회에서 통과된 법을 바꿔야 하고 현 정권의 고위층이 너나없이 되풀이해온 원안 추진 약속을 뒤집어야 한다. 야당은 접어놓고라도 한나라당 자체가 찬·반으로 완전히 양분돼 있는 상황에서 세종시 수정법안에 찬성할 의원 수는 전체의 3분의 1이 겨우 넘는 데 불과하다.

어제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는 자중지란 그 자체였다. 세종시 수정을 추진하는 친이계와 원안 추진을 요구하는 친박계가 국민투표를 놓고 "비겁하다" "아니다"고 맞붙었다. 정몽준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도 하루 사이에 서로 정반대되는 의견을 밝혔다. 지금 이 상태로는 충청권 주민이나 야당을 설득하는 것은 고사하고 여당 내부를 설득하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세종시 수정은 상식적으론 대단히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을 타파하려면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놀랄 만한 파격적 대안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충청권 주민들의 닫힌 마음이 열리고 박근혜 전 대표나 야당들도 원안만 고집하다간 오히려 나라 전체를 살피지 못한다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파격적 대안을 만들려면 파격적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가까운 한나라당의 한 재선 의원은 "알아봤더니 아무것도 준비라고 한 것이 없어서 나도 놀랐다"고 했다 한다. "물밑에서 친박을 설득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하나도 안 했더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세종시 논란이 시작되고 나라가 들끓은 지 몇 달이 지나서 나온 총리 담화가 몇 달 더 기다려달라는 것이니 여권 내부에서조차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이란 것이 실체가 있기는 있는 것이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이다. 이런 자세로는 세종시 수정 보완을 이끌어낼 수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는 이 사태를 냉철하게 돌아봐야 한다.

정부는 대기업 계열사 한두 곳과 일부 대학의 병원, 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세종시 이전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정도로 충청권과 정치권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세제 지원과 규제 완화도 추진한다지만 정부가 가라고 해서 가고, 오라고 해서 오는 세상이 아니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준비해 국민이 무릎을 칠 만한 대안을 갖고 국민과 다시 만나야 한다. 조선일보 2009.11.5 사설 A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