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대국가상징물연구소

2010년 2월26일 캐나다 밴쿠버의 퍼시픽 콜리세움 빙상장.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시상대에 오른 ‘피겨 여왕’ 김연아(22·고려대)는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감정이 북받친 듯 눈물을 흘렸다. 김연아는 “그동안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들으면 눈물이 나오려고 했는데 꾹 참았다”며 “하지만 오늘은 너무 기다렸던 자리여서 참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애국가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국가’로서 국민과 애환을 함께해 왔다. 국가의 각종 공식 기념일은 물론이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시위 현장에서, 올림픽 등 국위를 만방에 떨친 자리에서도 애국가는 태극기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런데 최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애국가를 부정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과연 그의 주장처럼 애국가는 여러 노래 중 하나일 뿐일까. 애국가에 대해 그 유래부터 국가로 자리 잡는 과정, 법적 근거 등까지 모든 사실을 정리했다.

1.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나

독립협회는 1896년 9월22일 독립신문 논설을 통해 애국가 제정과 보급 운동을 처음으로 제안했다. 이어서 1902년 국가, 국기 등을 제정하기 위해 고종 황제가 설치한 기장조성소(旗章造成所)를 통해 황실 시위연대군악대의 군악 교사였던 독일 출신의 프란츠 에케르트가 ‘대한제국애국가’를 만들었고, 같은 해 8월15일 국가로 제정됐다. 대한제국애국가는 1910년 대한제국이 일본에 강제 병합되며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대한제국애국가 외에도 학교 등 민간에서 여러 종류의 노랫말로 된 애국가가 불려 오다 1907년을 전후로 현재의 애국가 노랫말이 만들어졌고,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 곡에 맞춰 부르게 됐다.

그러다가 애국가에 남의 나라 곡을 붙여 부르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안익태 선생이 1936년 현재의 애국가를 작곡했다.

2. 작사자는

1955년 정부에서는 애국가 작사자를 밝히기 위해 문교부와 국사편찬위원회 공동으로 학계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애국가 작사자 조사위원회’를 구성, 1955년 4월4일부터 1955년 5월23일까지 활동했다. 당시 위원회에서는 안창호, 윤치호, 최병헌, 김인식, 민영환 등 단독 작사자설과 합작설, 개작설 등 여러 주장에 대해 사실 관계를 밝히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밝히지 못하고 작자 미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3. ‘안익태 애국가’의 시작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는 외국에서 널리 불리다가 1940년 북미 지역에서 처음 국가로 사용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69호에 ‘1940년 북미 대한인국민회 중앙집행위원회는 안익태 작곡의 애국가 사용 허가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요청하여 임시정부는 1940년 12월20일 사용을 허가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45년 11월12일 백범 김구 선생은 애국가 악보를 국내외에 널리 보급하기 위해 한국어·영어·중국어로 된 ‘한국 애국가’ 악보집(작은 사진)을 중국에서 발간했다. 이후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애국가를 불러 국가로 공식 인정됐으며, 영문 식순에는 ‘KOREAN NATIONAL ANTHEM’으로 표기됐다.

4. 법적 근거

애국가는 1984년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에 관한 규정’과 2007년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법 시행령’ 등에서 국가로서의 법적 근거와 지위를 부여받고 있다. 이 법령들은 국기에 대한 경례 시 국기 게양식·강하식 때 애국가를 연주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애국가가 국가라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 2010년 제정된 ‘국민의례규정’에서도 국민의례를 시행할 때 애국가를 제창하거나 연주하도록 돼 있다.

물론 ‘국가는 애국가’라고 명시한 법률 조항은 없다. 애국가는 보편적이고, 국가로서의 역사성과 정통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규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 정부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애국가는 일제강점기 때 저항과 항거의 상징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물론 정부 수립 이후에도 국내외 모든 공식 행사에서 제창돼 왔다. 국민 가슴속에 자연스럽고 확고하게 법 규범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이석기 의원 발언 사태에서 보듯 일부 인사들의 애국가 폄훼 발언이 또 나올 수 있다. 이 때문에 최근 김정록 새누리당 의원은 ‘대한민국의 국가는 애국가로 한다’는 내용 등을 담은 대한민국 국가 상징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애국가의 악곡 및 노랫말도 법안에 명시했고, 애국가의 제창 및 연주 등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했다.

5. 저작권은 어디에

1965년 9월 스페인에서 작곡자인 안익태 선생이 작고한 후, 안익태 선생 유족 측에서 2005년 2월 대한민국 정부에 애국가 저작권을 양도함에 따라 현재 정부가 애국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다. 애국가는 정부의 허가 없이 누구나 부르고 사용할 수 있지만 애국가를 편곡하거나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한국저작권위원회의 사용 허가를 받아야 한다.

6. 연주·제창되는 국가행사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 등 국경일과 각종 법정 기념일·기념식에는 애국가를 제창해야 한다. 정부 시무식과 대통령 취임식, 국무총리 이·취임식에서도 애국가를 제창한다. 이외에도 정부나 공공기관 등에서 시행하는 공식 행사에서는 애국가를 연주하거나 제창해야 한다. 과거에는 애국가 제창이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시킨다는 의미에서 일반 행사장에서도 불렸으나 최근엔 민간 행사장에선 애국가를 부르지 않거나 선택적으로 부르고 있다.

7. 외국의 국가 현황

외국 국가의 법적 지위는 다양하다. 프랑스와 중국은 헌법에, 미국과 일본은 법률에 국가가 규정돼 있으며, 영국과 호주는 관습으로 국가를 인정하고 있다. 프랑스의 국가는 ‘라 마르세예즈’로서 프랑스대혁명 발생 직후인 1792년 4월 루제 드릴이 작사와 작곡을 했고, 당시 마르세유 출신 의용군들이 파리로 진군하면서 이 노래를 부른 데서 명칭이 유래됐다. 미국의 국가는 작곡자가 미상이며, 영국의 국가는 ‘신이여 여왕을 보호하소서’로 작곡자와 작사자 모두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 않다. 중국은 1949년부터 ‘의용군행진곡’을 국가로 사용하기 시작해 2004년 헌법을 수정하면서 공식화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국가인 ‘기미가요’ 사용을 중단했다가 1999년 국기국가법을 통해 공식 국가로 규정했다.

8. 북한의 국가는

북한의 국가 명칭도 ‘애국가’이지만 우리나라의 애국가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김일성 주석의 지시에 의해 1947년 만들어졌다. 월북 시인 박세영이 작사를 했고, 광산 노동자 출신 음악가 김원균이 작곡했다. 북한에서도 새 애국가가 제정되기 이전까지는 우리나라 애국가와 같은 노랫말에 ‘올드 랭 사인’ 곡에 따라 애국가를 불렀다. 새 국가는 1948년부터 9월부터 부르기 시작했고, 1992년 4월 사회주의헌법 165조에 국가로 규정됐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국가의 자격으로 참가하면서 국기 게양식 때 한국에선 최초로 이 곡이 공식적으로 연주됐다.

9. 민중의례서 부르지 않는 이유

‘민중의례’라는 형식이나 용어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반정부 집회·시위 현장에서 발생했다. 정확하게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민중의례가 시작됐는지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는 게 진보 성향 단체들의 공통된 견해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신군부 독재에 대한 저항 운동이나 집회 현장에서는 민주화 투쟁 과정에서 산화한 인물들에 대한 묵념을 관례적으로 진행했으며, 투쟁가인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기완 씨가 작사한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이 시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 총탄에 숨진 시민군 지도자 윤상원 씨를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후 1980년대 학생 운동권, 민주 세력, 노동권에서는 애국가를 대신해 이 노래를 행사 때마다 부르게 됐다. 학생·노동 운동 출신 인사들은 “당시엔 헌정을 짓밟은 쿠데타 세력이 강요하는 애국가를 투쟁 현장에서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일부 진보 인사들은 “1980년 광주에서 신군부에 반대하는 시민들 역시 애국가를 불렀다”고 말해 진보 진영이 의도성을 갖고 애국가를 민중의례에서 배제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펴고 있다.

10. 태극기·무궁화의 법적 근거는

태극기는 2007년 1월26일 제정된 ‘대한민국 국기법’이 있으나 무궁화는 국화로 명문화된 법령이 없다. 하지만 무궁화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아 왔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은근과 끈기로 일본에 저항하는 우리 민족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노랫말이 애국가에 삽입됐고, 1948년 8월15일 정부 수립 기념식에서 애국가가 국가로 불리며 무궁화도 자연스럽게 나라꽃으로 자리 잡았다.

김정록 의원이 발의한 국가 상징에 관한 법률안은 ‘애국가를 국가로 할 뿐만 아니라 태극기와 무궁화를 각각 국기와 국화로 한다’는 내용을 명문 규정으로 담고 있다. 이 법안은 ‘모든 국민은 국가 상징을 존중하고 애호해야 한다’는 책무와 ‘8월8일을 국가 상징의 날로 한다’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